“기지 앞에 우리가 함께 있다”

박소현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운영위원

미국과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의 깊고 질긴 인연은 언제부터였을까. 1945년 해방이 되었지만 일장기가 내려간 그 국기게양대에 성조기가 올라갔던 그때부터였을까. 일본의 패전에도 미국이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에 전쟁범죄 책임에 대한 면죄부를 슬쩍 주었을 때부터였을까. 미국은 당시 오키나와를 미군정 아래 두고 거대한 아시아 침략 기지를 건설할 기반을 마련하면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 세력을 굳건하게 유지하는 것은 물론 점차 확장해나가고 있다. 종전 71주년을 맞이하는 2016년 오늘에 와서도 여전히. 이러한 미 국방정책은 복합적이고 광범위한 정세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다양한 문제를 꾸준히 낳고 있다. 이런 복잡하고 다층적인 갈등의 양상이 집약적으로 포착되는 지점이 바로 미군기지 문제가 아닐까 싶다. 오키나와 후텐마 기지 이전에 따른 대체지로 정해진 헤노코 신기지 공사현장 앞 농성장에서 마을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하나의 기지가 단순히 이전하는 문제가 아니다. 새로운 요새를 만드는 것이다. 여기에 기지가 만들어지면 헤노코 바다는 미국의 바다가 된다. 우리가 저항하지 않으면 안 된다.”

<헤노코 신 미군기지 건설현장 정문에서>

이번 기행 일정 중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이 바로 이 헤노코 농성장이었다. 여기에서 그 누가 강정을 떠올리지 않을 수 있을까. 올 초 결국 강정마을엔 해군기지가 들어섰다. ‘민군복합형관광미항’이라고 덧칠한 것이 무색하게 벌써부터 마을 내부에 총을 들고 군인이 들어와 훈련을 하는 등 비민주적일뿐더러 그 자체만으로도 폭력적인 행태들이 최근에 벌어졌다고 한다. 곧이어 다음 달인 6월엔 미군이 훈련을 목적으로 해군기지에 들어오기로 결정되었다고도 한다. 미군기지가 절대 아니라고 해군이 입장을 밝힌 것과 달리 점차 미군의 기지 활용도가 높아질 것이 뻔하지 않겠느냐는 말들이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 오고 간단다. 이는 헤노코나 강정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기지 주위에서 살아가거나 그럴 예정에 처한 주민들은 다양하고 수없이 많은 갈등을 겪고 있다.

<515 오키나와 평화대행진에 함께 한 한국 참가단>

후텐마 기지는 어떠한가. 오키나와 전쟁 당시, 오키나와 본도에 상륙한 미군은 마을 사람들을 강제로 수용소로 이주시키고, 그 자리에 일본 본토를 공격할 목적으로 후텐마 기지를 건설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주민들이 만 명 정도 살고 있던 꽤 번화했던 마을에 거대한 기지가 들어서게 되었다.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은 기지 건설 후 수용소에서 나온 이후에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또 멀리 떠나지도 못한 채 그와 가까운, 철조망이 쳐진 기지 바로 근처에 집과 학교를 짓고 살아왔다. 이는 전투기 소음 문제 같은 당장의 현실적인 문제를 넘어 기지 건설 자체가 비민주적으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이는 한국의 대추리에서도 반복되었고 오키나와 북부 지방 얀바루에서도 현재 진행 중인 문제이다. 얀바루는 오키나와의 수원이다. 이곳이 오염된다면 나하에 보급되는 물 75% 이상이 문제가 생기게 된다. 미군기지 내 환경파괴 문제가 일반적이고 고질적인 문제라고 보았을 때 이곳에 여섯 개의 헬기착륙장이 들어서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주민 입장에서 당연하지 않은가. 그것도 그중 하나는 초등학교 바로 옆에 들어설 예정이며 그냥 헬기착륙장이 아니라 엄청난 풍압과 잦은 사고를 동반하는 오스프리 이착륙장이라면 말이다. 제대로 된 주민설명회 없이 부지를 선정하고 공사를 진행했다는 것은 70여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미군의 태도는 후텐마 기지를 건설할 무렵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제9회 동아시아 미군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심포지엄을 마치고>

이번 기행에서 가슴으로 느낀 말이 있다. ‘오키나와의 문제는 세계의 문제’라는 말이다. 오키나와에서 목격한 기지문제는 한국의 문제와 닮았다. 국제 정세에 따른 기지 건설의 양상과 여기에서 파생되는 비슷한 문제들에 대해 서로가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같은 문제를 공유하고 있으며 서로를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과 미국과 일본이 강력한 군사동맹을 맺고, 과거의 질긴 연을 이어오는 것 이상으로 한국과 일본의 활동가들이 깊이 연대할 수 있는 기회가 늘었으면 한다. 뜨거운 태양, 시시각각 변하는 구름과 그 너머에 있는 파란 하늘 그리고 하얀 산호 해변이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바다로 둘러싸인 섬, 오키나와. 눈부신 만큼 지키고 싶어지는 이곳에 서로에 대해 알고 싶어 하고, 힘이 되고 싶어 하고, 만나고 손잡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말이 잘 통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오키나와의 아름다운 석양을 뒤로하고 함께 한 사람들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