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8일(수), 천주교 예수회 센터 1층 강의실에서 제주4.3 70주년 기억 특별 강좌 – 민중항쟁으로서의 제주4.3 – (강사:다사함 김명식 선생)가 진행되었습니다.

이하에서는 강의 현장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김명식 선생님이 현장에서 말하는 형식으로 정리한 강의록을 공유합니다. 꼭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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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함 김명식 선생님>

 

들어가면서

 

제가 여러분들과 같이 읽으려고 가져온 시가 하나 있습니다. <너 있는 곳에>. 바로 여기 이곳이(강의 장소인 천주교 예수회 센터) 제가 10년 동안 살았던 장소입니다. 제가 여기 수련생이었어요. 신부가 되려고 신학공부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경찰이 저를 잡아가서 감옥에 집어넣더라고요. 저는 알지도 못했는데,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의 배경인물이라는 혐의였습니다. 저는 오로지 이 땅에 참다운 신학을 정립해야 되겠다고 신학 공부를 했을 뿐인데 말이죠. 이 이야기를 한 이유는 저에 대해서 말하는 게 아니라 바로 너 있는 그곳이 바로 4.3이라는 겁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 자신을 진실화시키는 작업, 이 작업을 1948년에 제주도 사람들이 했습니다.

제주도가 어떤 곳입니까? 옛말에 ‘사람이 나면 서울에 보내고 말이 나면 제주로 보낸다’라는 말이 있죠. 제주도가 말이 사는 곳입니까? 이렇게 아름다운 바다가 있고 이렇게 아름다운 산이 있는 제 고향인데, 사람이 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이 나면 제주도로 가라. 이래도 되겠습니까? 이 역사가 몇 천 년 동안을 이어져 왔습니다. 역사란 것이 무슨 단기 몇 년에 무슨 일이 일어났다란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이곳이 어떤 장소인지를 찾아내면 역사 공부를 하는 겁니다. 우리가 이 역사 앞에서 4.3을 규명하는 것은 제주도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온 인류의 역사가 4.3을 통해서 분출했다는 것을 규명하는 것입니다.

베를린이라든지 불란서라든지 모든 곳에 홀로코스트와 제노사이드가 있고 모든 곳에 제주도 학살이 있습니다. 이게 역사입니다. 이런 내용을 담은 교과서 읽어보신 적 있습니까? 이런 문제가 수능시험이나 대학 강의에 나온 일이 있습니까? 왜 항의하지 않습니까? 4.3은 제주도에만 있는 게 아니라 백두산에도 지리산에도 오대산에도 모든 산에 있습니다. 이 땅을 한 번 뒤엎어보세요. 거기에 4.3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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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식 선생님이 소개하신 시>

 

4.3의 핵심 세 가지 : 자주, 자립, 자치

 

자주

4.3의 핵심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첫 번째로 주체입니다. 순서를 매기는 것은 편의상 붙이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주체라 말하면 두드려 맞았죠. 왜? 북한에서 주체라 하니까 여기는 안 된다는 거죠. 그래서 대체하려고 주인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어쨌든 제주4.3은 주체를 확립하고자 일어난 일입니다. 그 이유들이 많지요. 일단은 미군정입니다. 갑자기 일제강점에서 미제강점으로 바꿔졌습니다. 어떤 의미입니까? 일본은 안 되고 미국은 됩니까? 미국을 한자로 쓸 때 중국과 일본에서는 쌀 미米를 쓰죠. 한국에서는 아름다울 미美를 씁니다. 이것이 역사입니다. 미국을 영어로 아메리카라고 하는데 아메리카 대륙의 주인은, 주체는 누구입니까? 인디언 아닙니까? U.S.A라는 말을 봅시다. United States of(or in) America. of입니까, in입니까. 여기에 음모가 있습니다. 미국사람들은 of라고 합니다. 자기 땅이라는 거죠. 인디언의 땅인데 왜 자기 땅이라고 합니까? 이 음모가 1945년 8월 15일에도 일어납니다. 바로 미군사령관 포고 제1호입니다. 여러분들 점령 정책의 포고를 읽어 보셨습니까? 포고를 교과서에 남겨두겠습니까, 아니면 학교에서 점령사를 가르쳐주겠습니까.

하나만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아메리카는 어떤 뜻인가? 인디언은 과학적으로 몽고 쪽이라고 하지만 일단 크게 보면 아시아 쪽에 가깝다고 합니다. 아메리카가 인디언의 땅이라고 하면 어째서 of를 써야하나요? of는 소유격이죠. 문법적으로 동격일 경우도 있어요. 아메리카의 땅이라면 미국 땅은 아니잖아요. 인디안 땅이죠. 그런데 그렇게 씁니까? 미국인들은 하나도 예외 없이 유럽에서 아메리카로 건너갔습니다. 왜 건너갔을까요. 1492년에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습니다. 이때부터 미국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였을까요? 4-5천만 명을 죽였다고 합니다. 제노사이드 아닙니까? 독일 유태인 학살보다 약 다섯 배가 많습니다. 이런 내용을 담은 교과서를 제가 쓰고 싶은데 머리가 나빠서 못하겠어요. 여러분들이 하셔야 합니다. 이걸 밝혀내는 게 4.3을 밝히는 단초입니다 인디언을 학살하는 방법과 제주도에서 제주도민을 학살하는 방법이 똑같습니다.

어떤 방법이었습니까? 어떻게 죽였을까요? 카우보이 영화를 몇 편 정도는 보셨겠죠. 정의로운 사람은 전부 누굽니까? 존 웨인. 잘생기고 권총도 기가 막히게 돌리면서 어쩔 땐 세 사람도 죽입니다. 너무 벅차고 혀가 말라서 말이 잘 안 나옵니다. 이이제이夷以制夷가 뭡니까? 중국도 일본도 미국도 우리를 오랑캐로 봤습니다. 이 오랑캐란 말을 언제까지 사용했습니까? ‘무찌르자 오랑캐 몇백만이냐’ 저분은 끄덕끄덕 하시는 거 보니까 제주에서 그런 노래를 소학교 때 불렀을 거예요. ‘무찌르자 공산당 몇백만이냐’ 동족에게 오랑캐라고 한 족속은 우리 족속입니다. 반성해야죠. 북한에 대해서 요즘 분위기가 조금 좋아지지만 트럼프가 조금만 삐끗해보세요. 바로 무찌르자 오랑캐입니다. 이게 4.3입니다. 그럼 어떻게 죽였느냐? 제주사람을 통해서(의해서) 제주사람을 제압한다(죽인다). 이것보다 더 지독한 말은 살해라고 하죠.

제주도 사람들이 첫 번째로 주체, 주인이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자주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자립이고 세 번째는 자치입니다. 땅 주인이 침입자가 왔을 때 이 땅 주인은 나라고 하겠죠. 일본과 미국이 왔을 때 여기는 내가 주인이라고, 그렇게 말한 사람이 있습니까. 미군사령관 포고령 제 1호를 보세요. 포고령 1호에서부터 주체를 말살합니다. 포고령에는 남한이라고 되어있어요. 기가 막힙니다. 그런데 맥아더의 포고령에는 달라요. 조선이라고 되어있어요. 이건 무슨 음모가 있는 겁니다. 남한이라는 말은 이미 미국이 올 때부터 남한이라는 단독정부를 만들어서 자기들이 차지하겠다는 겁니다. 며칠 후에 보니까 조선 사람들이 가만히 두지 않을 것 같으니까 조선인민이라고 바꾼 것이죠. 이렇게 포고령이 시작됩니다. 자주, 자립, 자치의 세 가지를 못하게 한 것이 72호라는 법령입니다. 제주도 사람을 잡기 위해서 82개의 항목이 있습니다. 아무도 빠져나갈 수 없을 정도로 촘촘히 그물을 쳐놨습니다. 그래도 1945년 8월 15일 여운형, 안재홍 등이 건국준비위원회를 만듭니다. 8월 15일이 어떤 날입니까? 일본사람들이 항복했죠. 거기에도 음모가 있습니다. 미국이 일본에 항복 선언을 받는 대신 하나의 조건을 줍니다. 미국이 항복하라고 하니까 일본 측에선 ‘너희들이 만약 우리를 점령한다면 일억 일본인들이 배를 갈라서 죽겠다.’고 합니다. 일억 명이 할복하겠다고 하니까 맥아더가 놀란 거예요. 폭탄을 떨어트려 이긴 줄 알았는데 기가 막혀서 조건을 하나 내요. 천황제를 인정을 해주겠다. 천황제를 국체라고도 합니다. 국체를 인정하면서 항복을 받은 거예요. 이런 점령을 간접점령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미군들이 올 때는 어떤 점령을 합니까? 직접점령입니다. 우리나라는 국체가 없다는 겁니다. 국체가 없습니까? 단군도 고구려도 다 있는데 말이죠. 또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국가가 아니라고 구체적으로 씁니다. 우리나라 역사에는 미 점령사가 싹 빠졌습니다. 함정입니다. 아시아를 침략한 국가의 국체를 인정했다는 것은 미국이 잘못한 것입니다. 미국은 조선에 들어온 미군정을 조선의 과도정부라고 명명합니다. 아까 인디언 이야기를 한 것은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과도정부든 직접정부든 간에 투표도 안했고 누구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은 누구의 허락도 받지 않고 4-5천만 명의 인디언을 죽였습니다. 우리에게도 일언반구 없이 들어와서 미군정은 조선반도의 과도정부다, 나중에는 남조선의, 이건 무슨 음모가 있는 겁니다. 북조선 이야기했다가는 러시아 중국한테 반발을 살 거니까, 이미 방어선을 38도선으로 태평양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선을 그어놓았습니다.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군정을 폅니다.

미국은 이미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필리핀에 전부 반공기지를 만듭니다. 반도에 조그맣게 남아있는 제주도가 있었습니다. 이것을 먹은 겁니다. 제주도에서 이렇게 반공기지를 만드는데, 여러 동네에서 군인들이 반대를 합니다. 9연대와 14연대. 9연대는 제주도고 14연대는 여수순천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학교에서는 공부가 전혀 안 되어있습니다. 9연대에 문상길이라는 중위가 있었습니다. 문상길 씨의 재판기록을 자세히 보면 ‘나는 군인으로서 제주도 30만 인구를 멸절시킬 이유가 없다. 그래서 나는 다른 행동을 결행할 수밖에 없다.’ 그게 군인이 해야 할 일 아니겠습니까? 근데 명령은 배추를 거꾸로 심으라고 해도 심는 거야, 이런 이상한 말들이 많이 있죠. 그게 옳은 군인입니까? 군인에 앞선 것은 정의요, 자유요, 인권입니다. 인권을 말살하고 사람을 죽여 정의를 말살하면서 부정의스러울 겁니까? 자유를 말살하면서 폭압을 쓴다면 군인이 아니지 않습니까? 제일 먼저 인권과 정의를 주장한 사람이 문상길 씨입니다. 이 사람은 박진경이라고 하는 대령을 권총으로 쏴서 죽입니다. 죽인 것을 옳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어떤 심정으로 박진경 대령을 죽일 수밖에 없었을까요? 박진경이 뭐라고 했느나면 ‘제주도 30만을 다 죽여도 폭도는 전멸시키겠다.’ 이 말 한마디에 문상길 중위가 피가 거꾸로 돕니다. 까닭 없이 총을 쐈겠습니까. 문상길 씨가 그런 일을 하기 전에 9연대에서 적어도 100명 이상이 반기를 듭니다. ‘박진경의 작전은 도민에 반할 뿐만 아니라 군인정신에도 반한다. 군인정신이란 민족지상이다. 민족을 우선해야 한다.’

대한민국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좋은데 남의 나라를 침략하면 어떻게 합니까? 베트남을 침략하러 갈 때 제가 부산항에서 반대를 많이 했습니다. 우리 세대가 한국 평화운동의 전초죠. 그런데 그때 많은 목사, 신부, 중이 뭐라고 기도를 하셨느냐? 엄청나게 기괴합니다. ‘많은 전과를 올리고 오라.’ 이게 무슨 말입니까. 베트남으로 떠나는 젊은 장병들 앞에서 이런 기도를 했어요. 눈물이 나지 않습니까? ‘안됩니다. 남의 나라 백성을 죽이는 것은 언제 알지는 모르지만 그들에 의해서 우리가 죽을지도 모릅니다. 안됩니다.’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때 몇몇 젊은이들이 길가에 주저앉아서 ‘이게 나라냐’고 했습니다. 얼마 전에도 광화문에서 했잖습니까. ‘이게 나라냐’ 이런 소리가 나오면 정권은 주권의 지지를 상실한 겁니다. 그럼 정권은 뭐가 됩니까? 쉽게 말하면 미친개입니다. 미친개는 약이 몽둥이라고 하죠. 그런데 잘못을 자기한테 돌려야지, 왜 남한테 돌립니까? 누가 잘못했습니까? 그리고 미 점령군이 직접 작전을 펴기 시작합니다. 이게 4.3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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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

자립입니다. 스스로 일어서겠다. 밥을 먹지 않으면 일어설 수 있습니까? 제주도 사람들이 밥을 원하고 있는데, 1946년 10월 9월에 미군정이 추곡수집령을 내립니다. 제주도 사람들이 왜 밥을 굶었을까요? 일제 때 다 털어갔죠. 전쟁 후에 보살펴 주는 사람이 없고 오직 밭을 갈아서 보리, 조, 고구마, 감자, 무 같은 걸 먹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내놓으라고 합니까? 오천 석을 내놓으라고 합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자립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제주도 사람들은 화가 나버립니다. 미국이 우리를 구원해준다는데, 이게 구원이야? 이게 나라야? 과도정부야?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일어나요. 그런데 한 가지 볼 게 있습니다. 1945년 10월부터 시작해서 1946년 10월까지 제주도 사람들이 밥이 없고 스스로 자립할 수 없었는데, 무엇을 세웠을까요. 밥도 없는데 학교를 세웠습니다. 이건 상상을 초월하는 겁니다. 스스로 세운 겁니다. 정부가 없었으니까. 중학교 10개, 초등학교 44개를 세웁니다. 이건 지방자치의 완성에 가까운 일입니다. 근데 이런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이렇게 자발적으로 자립적으로 살아가겠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총을 겨눴습니다. 미국은 이 땅에 아까 이야기한대로 남한을 사로잡으려고 온 겁니다. 무슨 해방군이니 뭐니 헛소리입니다. 이게 4.3입니다. 자 이렇게 해서 이 사람들이 돈도 없고 배도 고픈데.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점령군 포고문에 점령국의 모든 목적에 사용하는 공용어를 영어로 규정합니다. 조선어와 일본어를 쓸 수 있지만 최종적인 가치판단은 영어원문을 기본으로 한다는 겁니다. 일제가 일본어를 쓰라고 한 것과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추곡수집이라는 말에, 한글이 아니라 영어라는 말에 제주도 사람들이 가만히 있다면 이상한 거예요. 이렇게 엄청난 저항감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3.1절 행사를 합니다. 46년 행사에서는 학생들이 주축이 됩니다. 오현중학교라는 학교였는데 제 출신 학교입니다. 중학생이면 그때 나이가 좀 들었다고 해도 스물도 안 된 사람들이에요. 47년에도 3.1절 행사를 하는데 열다섯 살 난 아이가 죽습니다. 멀리서 구경하는데 총에 맞은 겁니다. 처음 나온 외침이 무엇이겠습니까? ‘저 어린아이를 살려내라!’ 누가 제일 먼저 했을까요? 부모님이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 사람이 4.3을 일으키지 않았겠습니까? 정치입니까, 정책입니까, 전략입니까. 내 아들을 살려내라고 하는 게 바로 4.3입니다. 아무리 건국준비위원회 여운형이 했어도 안 되던 것이 제주도에서는 ‘내 아이를 살려내라! 생명을 살려내라! 너희들이 이 땅에 온 것은 우리 생명을 지키러 온 것이다!’ 이런 외침에 모든 포괄적인 맥락이 담긴 겁니다. 당시 북 국민학교에서 열렸던 3.1절 행사였습니다. 줄잡아 3만 명이 모여서 행사를 했는데 여기서 여섯 명이 죽습니다. 직접 총에 맞아서 죽습니다. 여기서 함정이 하나 있지요. 총을 쏠 때 누구 허락을 받아야 합니까? 작전명령권이 누구에게 있습니까. 미군이 명령을 했다는 겁니다.

발포한 책임자를 조사하는 척은 합니다. 그런데 진실이 없었습니다. 제주도 사람들이 저들은 우리가 따라야 될 사람이 아니라고 하면서 일어납니다. 이 사람들이 공산당입니까? 정체를 밝혀야 합니다. 학자들은 공산당이다 남로당이다 여러 가지 말을 하는데 저는 공산당도 건준도 인민위원회도 들어있는 종합적인 밥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하나만 있는 게 아닙니다. 그걸 저는 얼마 전에야 알았습니다. 광화문에서 촛불시위를 하는데 4.3을 찾았습니다. 노동자도 진보주의자도 공산주의자도 무지렁이도 다 들어왔을 거예요. 그런데 오직 한 가지 촛불을 들었어요. 한사람도 예외 없이. 나는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노동자다 무지렁이다, 한 사람도 그런 말 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4.3으로 돌아가서, 최초의 촛불혁명은 4.3에서 시작됐습니다.

학자들이 남로당이 일으켰다고 말합니다. 남로당이 들어가 있었어요.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촛불을 들 때 나는 남로당의 촛불을 들었다 이렇게 말합니까? 당시 중국이나 일본에서 오는 지식인들이 최소한 5만 명이었고 인구가 당시 23만이라 하면 5만 명이 왔으니 거의 30만에 가까운 사람들이었죠. 개중에는 남로당도 트로츠키파도 그람시파도 있었을 겁니다. 근데 그 사람들이 촛불을 든 것은 하나밖에 없어요. 자주적인, 자립적인, 자치적인 인간으로 살고 싶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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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

세 번째는 자치. 스스로 나를 다스리고 싶다는 겁니다. 스스로라고 하면 우리는 당장 민주주의를 떠올리죠. 민주주의라고 하면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를 떠올리는데, 당시 그리스 지역에 이오니아라는 데가 있었습니다. 이오니아 사람들이 뭘 주장했냐면 이소노미아입니다. 이게 지배가 없는 상태라는 뜻인데, 우리말로 하면 바로 이웃입니다. 이웃끼리 같이 살 수 있어야 민주주의가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오니아는 그리스와의 싸움에서 패배하죠. 지금 민주주의는 다수결 원칙이 되어버렸습니다. 자유한국당이 숫자가 많으면 옳습니까? 다수결 원칙으로 보면 민주주의죠. 그런데 한 장소에서 이소노미아가 남아 있습니다. 4.3의 이웃사촌입니다. 이웃사촌에는 이념이 없습니다. 옆에만 있어도 좋은 거죠. 맛있는 게 있으면 옆 사람에게 건너가는데 이게 제주도에 많이 남아있습니다. 이것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게 제주말로 ‘수눌음’입니다. 이것을 조금 유식하게 말하면 두레공동체죠.

어쨌든 이렇게 해서 많은 물결들이 3월 1일의 사건을 통해서 일어나죠. 근데 갑자기 48년에 남한만이라도 단독선거를 해가지고 이승만이 대통령이 되면 좋겠다는 분위기가 진동을 합니다. 그래서 이 5월 10일 선거를 향해서 4.3은 일어납니다. 반동선거라는 거죠. 그런데 이 움직임이 굉장히 현실적으로 드러납니다. 먼저 이승만이 한국에 45년 10월에 들어왔습니다. 김구는 11월에 들어옵니다. 이승만이 들어올 때는 맥아더의 군용비행기를 타고 거의 무한자격을 부여받았죠. 김구는 개인자격으로 겨우 들어옵니다. 불평등하지 않습니까. 똑같이 독립운동을 했으면 왜 자격을 달리 부여합니까? 김구의 임시정부라는 타이틀을 다 없애버려야 이승만에게 자격을 부여해 미군정이 남조선의 유일한 정부가 될 수 있기 때문이죠. 김구는 통탄을 하면서도 조국에 들어가고 싶어 개인자격으로 들어온 거고요. 그리고 이승만이 한국의 공산당을 전멸시킵니다. 제주도에는 완전히 공산화 낙인을 찍었죠. 제주도는 70퍼센트가 빨갱이라는 발언을 합니다. 남조선의 유일한 정부는 점령군이니 점령군에 반기를 든 사람은 전부 빨갱이라는 거죠. 여러분들이 잘 알겠지만 박정희에게 반대를 하면 전부 국가보안법으로 묶었죠. 당시에는 포고령으로 묶었습니다. 이때의 포고령이 아까 말한 72호입니다. 그것을 자세히 읽어보면 다 걸릴 수밖에 없게 되어 있어요. 이렇게 치밀하게 미 점령군이 조치를 했는데도 그 그물망을 뚫고 일어난 게 4.3입니다. 그게 현실적으로도 성공했어요. 5.10선거에 유일하게 선거 무효화를 이끌어낸 게 북제주군의 두 곳입니다. 남제주군은 통과가 됐어요. 그것도 실질적으로 따져 봤으면 안 됐을 거예요. 육지에서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는 박헌영도 있었고 건국준비위원회 여운형도 있었고 남북수뇌 협상을 해서 통일정부를 이뤄서 그때 선거를 하자는 김구도 있었고 김규식나 송진우 기라성 같은 사람이 어느 한 곳의 투표도 무산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미군정이 북제주군 두 선거에는 무효선언을 했습니다. 투표율이 50퍼센트도 안되니 이 선거는 연기한다고요. 그런데 그 결과가 뭐냐면, 제주도 사람들이 한울산으로 갑니다. 갈 곳이 일본입니까, 미국입니까. 갈 곳이 하나밖에 없어요. 바다로는 못가고 산으로 갑니다. 우리말로는 한울산이 한자로는 한라산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 구원자가 계신 곳, 그렇게 민속적으로 입력돼있는 거죠. 의지할 데가 거기밖에 없는 거예요. 남로당만 갔습니까? 세 살짜리도 있어요. 젖먹이도 있어요. 이게 남로당입니까? 우리 역사가 잘못된 거예요. 4.3 70주년에 회복되어야 할 것은 색깔론이 아니라 제주도 사람이 주인행사를 하고 싶었고 자립해서 스스로 살아가고 싶었고 나를 스스로 다스리고 싶었다는 겁니다. 5.10선거가 끝난 다음에 점령군은 선거로도 안 되고 쌀 수집을 해도 안 되니 이제 남은 방법이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점령정책의 본색을 드러냅니다. The third degree. First degree는 체포, Second는 구속, Third는 심문입니다. 이것을 직접적으로 사용한 경우가 광주민주화운동 때죠. 예비 검속으로 저를 포함해가지고 20만 명을 잡아갔어요. 일단 체포를 해 구속을 시킨 다음 심문을 합니다. 여기서 배겨날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배겨났다면 무혐의거나 정신병 환자거나 가치가 없거나 입니다. 제주도 사람들은 이 굴레에 초토화된 거예요. 정지 명령을 내렸는데도 걸어가면 무조건 총살시켜라. 일개 대령한테 명령권을 다 주죠. 여기서 울분을 토한 사람들 중 세 사람이 있습니다. 이건 상징적으로 말하는 겁니다. 제주 9연대의 문상길 중위, 여수순천 14연대의 사람들, 9연대의 손선호 하사. 14연대의 사람들도 지리산, 산으로 또 갑니다. 여러분들이 단순하게 지리산 빨치산이라고 하는데 그건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말입니다. 이 배경 속에는 4.3도 포함됩니다. 4.3은 한라산으로 모든 생존권을 모은 겁니다. 이 사람들이 전부 산으로 갔습니다. 문상길 중위가 죽어가면서 ‘나는 박진경을 죽인 게 아니라 30만 제주도민을 살리기 위해서 한사람을 죽였다’고 했고, 손선호 하사는 ‘나는 저 사람(박진경)을 죽이는데 찬동을 했다. 왜냐하면 북촌이란 마을에 갔는데 어떤 젖먹이 아이가 죽은 아버지의 몸을 붙잡고 울고 있더라. 그걸 박진경이가 권총으로 쏴서 죽이더라. 그 다음에 마을에 들어가서 소, 말, 돼지를 사격연습이란 명목으로 쏴 죽이더라. 그때 저건 군인이 아니라고 판단을 했다’고 그래요. 어떻습니까. 군인이란 것이 대체 무엇입니까.

 

마무리하면서

 

이제 마무리를 하려 합니다. 산에는 뭐가 있을까요? 첫째로 하나님이 있습니다. 한울님이죠. 종교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미신적으로도 감각적으로도 위도 없고 아래도 없고 다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주시는 분이 한울님입니다. 둘째는 땅이 있어요. 땅도 마찬가지로 아래로 평등해요. 그 다음에 한라산에 누가 있을까요? 이웃들이 있습니다. 가서 보니까 이건 우리 동네 삼춘이고 이건 우리 동네 아주머니고 다 아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사랑입니다 그래서 피움이 생겨나는 거예요. 모든 사람이 민주주의라 하든 공산주의라 하든 피어나지 못하게 하면 잘못된 거예요. 피어나면 열매가 생겨요. 지금 저는 그분들 열매의 자식입니다. 제가 할일은 그분들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일입니다. 그게 여기까지 온 거예요. 여러분들이 앞으로 4.3을 공부하든 다른 일을 하든 4.3에 관련된 일이고 모든 일은 촛불에 관계되어 있으며 모든 일은 사람을 살리는 일에 관계되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강의를 마치겠습니다.

 

더불어 이번 강연에서는 제주4.3 70주년 범국민위원회 운영위원장이신 박찬식 교수께서 참석하셔서 마무리 발언과 함께 제주4.3 70주년 범국민위원회에서 준비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소개해주셨습니다. 그 발언도 함께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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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식 제주4.3 70주년 범국민위원회 운영위원장>

 

박찬식 제주 4.3 범국민위원회 운영위원장 발언

 

70주년입니다. 김명식 선생님이 아마 4.3이 일어나기 몇 년 전에 태어나셨을 것 같은데 그때 태어나신 분들이 70세가 됐다는 의미입니다. 당시에 직접적으로 피해를 당했던 생존 피해자들, 세대 유족들 지금 대부분 8-90세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을 합니다. 저희들이 50주년 때 첫 범국민위원회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그때 아마 첫 운영위원장님을 선생님이 하셨습니다. 그리고 20년 만에 다시 왔습니다. 그때는 단순했습니다. 50년을 넘길 수 없다. 4.3 진실 규명하라. 이거 하나로 해서 특별법까지 갔습니다. 그 당시 특별법에도 이미 피해배상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들어있었습니다. 그런데 일단 진상이 규명되고 나야 배상을 하든지 말든지 할 거 아니냐고 해서 다 빼고 사실은 진상규명을 위한 법을 만들었던 겁니다. 그래서 2003년에 보고서가 나오고, 보고서에서 4.3은 국가권력의 잘못으로 인해서 수많은 주민이 희생당한 사건이라고 규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후로 15년이 흐르는 동안 그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물론 국가가 잘못했다, 돌아가신 분들이 죽을 짓을 했기 때문에 돌아가신 게 아니라고 하는 정도의 명예회복이 이루어졌습니다. 그것만 해도 당시 유족들에게는 큰 치유의 과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치유되지 못한 역사의 상처들이 남아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70주년에는 꼭 한 매듭을 지어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배상문제도 있지만 특히 군사재판 무효화 문제가 있습니다. 그 당시 48년 12월, 49년 7월에 군사재판으로 일부는 즉결처형 당하셨고 2530여명이 육지 각 형무소에 끌려갔다가 한국전쟁 때 대부분 돌아가셨습니다. 학살을 당했죠. 극적으로 살아남으신 분들도 계시죠. 그분들 중의 일부가 작년에 재심을 신청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재심으로 해결될 수가 없다는 겁니다. 재심을 하려면 사실관계나 법리판단이 잘못됐다는 근거가 있어야 되는데 수사기록도 공소장도 심지어 판결문도 없습니다. 재판이 아니었다는 것이죠. 사실 그분들이 가장 큰 고통을 당했습니다. 중산간 부락에 있다가 갑자기 토벌대가 와서 죽인 경우에는 억울하다고 말하기가 그래도 쉬웠습니다. 근데 이분들은 너희들이 잘못해서 감옥에 간 거 아니냐는 게 찍혀있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빨갱이로 취급되어서 말도 못하고 그 유족들과 후손들은 가장 심한 연좌제 피해를 당했습니다. 수형기록이 있었기 때문에요. 최근까지도 억울하다고 말을 못 해오신 분들입니다. 너무나 한이 맺혀있습니다. 심지어는 저희들한테 그 수형기록을 불태워달라고 합니다. 근데 그건 이미 역사의 기록입니다. 불태우면 의미가 없습니다. 군사재판을 무효화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들의 명예와 피해를 회복해야 하는 게 특별법 제정의 중요한 내용 중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진상조사가 있습니다. 지금은 총론적인 배경이 어떻고 경과가 어떻고 대략적인 피해가 어떻다 이런 정도입니다. 구체적인 사건은 없습니다. 북촌에서 400명이 이틀 동안 돌아가셨는데도 거기에 누가 지휘를 했는지 남은 게 없습니다. 추가적인 진상조사도 필요합니다. 이런 내용을 담은 특별법 개정안이 상정되었습니다. 70년의 묵은 한을 내려놓고 갈 수 있도록 이번기회에 매듭을 지어야한다는 게 첫 번째입니다.

 

두 번째로는 가해자들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미국에 책임을 물어야 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그 책임을 묻는 과정이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이건 올해에 끝낼 문제가 아니고 이제부터 시작될 문제입니다. 미국의 책임을 묻는 서명운동도 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할 일라고 생각하고요.

 

세 번째로는 이름을 붙이는 역사의 자리를 제대로 잡게 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공식적으로 폭동이었습니다. 그 후에 국가권력이 잘못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당한 역사로 됐습니다. 그것이 지금 교과서라든가 모든 것을 다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냥 억울하게 죽기만 한건 아니잖습니까? 그동안 대부분 억울함을 인정받기 위해서 우리 아버지는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렁이였습니다, 농사만 짓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해왔습니다. 그런데 아까 3.1시위 이야기도 나왔지만 무지렁이가 문제가 아닙니다. 무지렁이가 왜 사리판단을 못합니까, 사실은 무지렁이가 아니죠. 해방 전에서부터 독립운동의 연장선상에 있었던 것이고 해방후에는 우리들의 나라, 우리들이 주인인 나라, 통일된 나라를 위해서 싸웠던 것입니다. 이념적이고 이론적인 걸 체계적으로 알아야 되는 게 아닙니다. 만약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죽었다고 이야기하면 동학농민들도 3.1운동 때 태극기를 들었던 사람도 아무것도 몰랐던 것이고, 작년에 촛불을 들었던 사람도 아무것도 모르는 거 아니겠습니까. 단순히 피해와 학살의 객체로만 존재하는 그런 식의 서술과 역사가 아니라, 사회와 역사의 주인으로서 행동했던 주권자로서의 역사를 이제는 다시 조명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30년, 50년이 지난 다음에 4.3은 그냥 억울하게 죽은 역사라는 것밖에 남지 않는다는 거죠. 물론 그 정명을 사회적인 수준에서 다음은 제도적이고 국가적인 수준으로 이뤄가는 데는 과정이 필요하고 하루아침에 되는 건 아니지만, 지금 70주년에 와서 더 이상은 늦출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해 이런 3가지 과제를 위해서 여러 가지 사업들을 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아래에는 제주4.3 70주년 범국민위원회에서 준비한 행사 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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