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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4. 8. (일) 제135호 

‘Watch M’ 주간 칼럼

제주4.3 앞에서 ‘국가’를 다시 돌아보다
-문재인 대통령의 제주4.3 추념사에 덧붙여


<제주4.3 70주년 추념식에서 추념사 중인 문재인 대통령>
 

제주4.3이 70주년을 맞았습니다.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린 추념식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생존 희생자들과 유족들을 만나 위로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추념사에서 “국가폭력으로 말미암은 그 모든 고통과 노력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다시 한 번 깊이 사과”했고, “4.3의 완전한 해결을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갈 것을 약속”했습니다. 대통령으로서는 12년 만에 참석해 읽어 내려간 추념사에는, 공권력에 의해 무고하게 희생당한 사람들에 대한 국가수반으로서의 사과와 마땅히 이뤄져야 할 진상규명과 배·보상에 대한 약속이 담겼습니다. 희생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는 사과와 진상규명, 희생자에 대한 후속조치 등 마땅히 들어가야 할 내용이 모두 담긴 추념사였습니다. 다만 이 훌륭한 추념사에 채 담기지 못한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을 이 글에서 언급해보고자 합니다.
 
추념사에는 4.3의 직접적인 희생자였음에도 자원해서 입대해 한국전쟁을 치른 고 오창기 님과 고 김태생 님의 이야기와 함께 “4.3에서 ‘빨갱이’로 몰렸던 청년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조국을 지켰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저로서는 두 청년의 그 갸륵한 마음에 대해서 짐작할 수도 없고, 섣불리 짐작하려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조국’이란 단어가 제주4.3을 둘러싼 복잡다단한 맥락들 중 한 가지 맥락을 지워버릴 수도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주4.3이라는 이름은 단순히 1948년 4월 3일이라는 특정한 날짜가 아니라, 해방 이후 남한을 통치하던 미군정과 그에 복무해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주장하던 이승만 세력, 즉 당시 ‘국가’라고 참칭되던 세력에 제주도민들이 항거했고, ‘국가’에 의해 진압당했다는 맥락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해방 이후 전국 각지에는 인민위원회라는 일종의 주민 자치 기구가 치안·행정 등의 업무를 맡고 있었습니다. 미군정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해산시키려 했습니다. 제주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미군정은 일제에 동조했던 관리들을 관직에 앉혔고, 해방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유입되어 식량이 부족했던 제주에 얼토당토않은 추곡수집령을 내리는 등의 행위를 저질렀습니다. 이러한 갈등이 쌓이다 분출된 것이 1947년 3월 1일, 제주북국민학교에서 열렸던 3.1절 기념행사였습니다. 이 행사에서 제주도민들은 ‘자주 독립’, ‘통일 독립’ 등의 구호를 내걸며 외세에 의한 통치를 반대함과 더불어 하나의 정부에 의해 통치되는 국가를 요구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당시 집회에서 경찰에 의한 발포가 있었고 6명의 도민이 사망했습니다.
 
발포사건에 분노한 제주도민들에 의해 3월 10일 민·관 포함 전체 직장 95% 이상이 참여한 총파업이 일어났고, 이에 제주도민 90%를 좌익색채를 띠었다고 규정한 미군정이 서북청년단과 경찰을 동원해 거의 1년 간 2,500명을 검속했고 3건의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했으며, 이에 반발해 1948년 4월 3일 무장대가 봉기했고,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5.10 단독선거에서 2개 선거구의 선거가 무산되었으며 이후 엄청난 희생자를 낳은 일련의 일들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처럼 제주4.3이라는 이름에는 당시 공식적으로(누구에 의해서일까요?) 인정되었던 ‘국가’에 항거했던 사람들이 그들이 인정하지 않았던 ‘국가’에 의해서 진압되었다는 맥락이 들어 있습니다. 1947년 3월 1일에 모였던 이들이 바랐던 것은 통일된 한 민족으로서 주권을 가지고 스스로가 스스로를 다스리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분명히 주체적이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조국을 지켰다”라는 말은, 학살자들이 학살을 자행할 수 있었던 근거 중 하나가 바로 그 ‘조국’이라는 이념 때문이었다는 것을 지워버릴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더 나아가 학살은 불의한 정치세력이 집권한 ‘조국’을 도민들이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는 것도요. 이렇듯 제주4.3은 ‘국가’라는 이름하에 한 집단이 얼마나 조직적이고 구체적으로 국가의 성원인 국민을 학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단어 선택을 했다고 말하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앞으로 제주4.3 과제를 해결해나감에 있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한 가지 맥락이 빠졌다는 아쉬움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제주4.3 70주년 범국민위원회는 올해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로 ‘정명(正名)’을 꼽았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듯 제주4.3이 위치한 복잡다단한 맥락을 고려해, 오랜 기간 사용되었던 ‘폭동’과 같은 거짓된 이름이 아닌 제대로 된 이름을 붙여야하기 때문입니다. 부디 이번 70주년을 계기로 ‘정명’을 비롯한 제주4.3의 모든 과제들이 정당하게 해결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군사안보 관련 이슈 Top 10 (2018, 3/28~2018,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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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활동 소개

[2017년 4월 7일] 제주 43, 70주년 기념행사 -43은 대한민국의 역사입니다-

지난 4월 7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제주 43, 70주년 행사가 열렸습니다. 갑자기 찾아온 꽃샘 추위로 차가운 날씨에도 많은 시민들이 함께 하였습니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이자 자주적 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정당한 민중의 항쟁이었던 제주 43의 의미를 되돌아보며 정당한 해결을 바랍니다.       <자세히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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