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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9. 3. (월) 제155호 

한 주의 시詩작

*이번 주부터 열군의 뉴스레터 watch M의 발행일이 월요일로 변경됩니다. 그와 함께 매주 한 편의 시를 소개하는 ‘한 주의 시詩작’이라는 코너도 개설되었습니다. 이 코너로 소식지가 조금 더 풍성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여행자

아무도 살지 않던 땅으로 간 사람이 있었다
살 수 없는 장소에서도 살 수 있게 된 사람이 있었다
집을 짓고 창을 내고 비둘기를 키우던 사람이 있었다
 
그 창문으로 나는 지금 바깥을 내다본다
이토록 난해한 지형을 가장 쉽게 이해한 사람이
가장 오래 서 있었을 자리에 서서
 
우주 어딘가
사람이 살 수 없는 별에서 시를 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가축을 도살하고 고기를 굽는 생활처럼 태연하게
 
잘 지냅니까,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할 줄 아는 말이 거의 없는 낯선 땅에서
내가 느낄 수 있는 건 잠깐의 반가움과
오랜 두려움뿐이다
 
두려움에 집중하다 보면
지배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지배하고 싶었던 사람이
실은 자신의 피폐를 통역하려 했다는 것을
파리처럼 기웃거리는 낙관을 내쫓으면서
나는 알게 된다
 
아파요, 살고 싶어요, 감기약이 필요해요,
살고 싶어서 더러워진 사람이 나는 되기로 한다
 
더러워진 채로 잠드는 발과
더러워진 채로 악수를 하는 손만을
돌보는 사람이 되기로 한다
 
그럼에도 불구했던 사람이
불구가 되어간 곳을 유적지라 부른다
커다란 석상에 표정을 새기던 노예들은
무언가를 알아도 안다고 말하진 않았다
 
그 누구도
조롱하지 않는 사람으로 지내기로 한다
위험해, 조심해, 괜찮아

하루에 한 가지씩만 다독이는 사람이 되기로 한다
 
아무도 살아남지 않은 땅에서 사는 사람이 있다
살 수 없는 장소에서도 살 수 있게 된 사람이 있다
집을 짓고 창을 내고 청포도를 키우는 사람이 있다
 
김소연, <수학자의 아침>, 2013


 
이 시에서 시인은 “할 줄 아는 말이 거의 없는 낯선 땅”으로 여행을 온 것으로 보인다. 지금 시인은 어떤 창문으로 “바깥을 내다”보고 있다. 시인이 서 있는 자리는 “이토록 난해한 지형을 가장 쉽게 이해한 사람이 가장 오래 서 있었을 자리”다.
 
‘쉽게’와 ‘오래’는 그 의미가 즉각적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이해하기 어려운(‘난해한’) 것을 쉽게 이해한다는 것은 언뜻 이해력이 빠른 것으로 생각되지만, 시인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때로는 대상을 이해하기 위해 오래 머무르며 대상과 함께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쉬운 길일 수 있다고, 시인은 말하는 것 같다. 이어지는 시를 찬찬히 읽다 보면, 시인 스스로도 그 자리에 오래 머무르고 있는 것 같다.
 
만약 그렇다면, 시인이 오래 머무른 이유는 “살 수 없는 장소에서도 살 수 있게 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창문으로 여행지의 낯선 풍경을 내다보는 시인에게, 불현듯 그 자리에 서 있었을 그 사람이 떠올랐을지도 모른다.
 
어떤 자리에 오래 머물렀을 때야만 생겨나는 마음이 있다고 믿는다. 불현듯 떠오른 생각을 끝끝내 놓지 않은 결과물이 바로 이 ‘여행자’라는 시가 아니었을까. 그 과정 속에서 시인은 “사람이 있었다”는 인식에서 “사람이 있다”는 인식으로 이동한다. 있었던 것이 지금 여기에도 있고, 결국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고,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게 되는 것. 그것이야말로 오래 머무름에서 생겨나는 어떤 갸륵한 마음이 아닐까.

‘Watch M’ 주간 칼럼

미군기지 현장에서 평화를 일구는 사람들
-제11회 동아시아 미군기지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 심포지엄에 즈음하여
 

헤노코와 평택의 이야기

8월 31일, 일본 오키나와 현이 미군 후텐마 기지의 헤노코로의 이전을 위한 매립 승인을 철회했다. 8월 8일 작고한 고 오나가 다케시 오키나와 지사는 7월 27일 기자회견에서 매립승인 철회 의사를 표명한 바 있다. 오키나와 현은 고 오나가 지사의 뜻을 이어 매립승인 철회를 진행한 것이다. 후텐마 기지를 헤노코로 이전하기로 한 발단은 90년대 중반 미국이 일본에 미일동맹을 재편을 요구하면서부터였다. 내용을 간략히 말하자면, 탈냉전 이후 미국의 동아시아 개입의 명분이 약화되자, 동아시아 내 아직 안보가 불안한 지역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미일동맹을 더욱 긴밀히 하자는 것이었다. 이것은 일본 국내 미일동맹의 제도적 여건의 정비를 동반하는 것이었다. 1)

한편 오키나와에서는 95년 9월 미군에 의한 초등학생 소녀 폭행 사건에 대한 저항으로 오키나와 현민 8만 5천명이 모여 기지 반대와 미일동맹을 재검토하는 내용을 주장한 총궐기가 일어났다. 오키나와 현민의 강력한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1996년 4월 미국과 일본 양국은 미일정상회담을 통해 미일동맹 재편을 공식적으로 합의했다. 합의에서 핵심으로 내세운 명분은 오키나와의 기지를 정리·축소하기로 했으며 그 과정에서 후텐마 기지가 반환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거기에는 후텐마를 돌려주는 대신 오키나와의 기지 기능을 저하시킬 수는 없으므로 다른 기지를 제공하라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오키나와 현민은 속지 않았다. 합의에 반발하며 96년 9월 전국 최초로 현민 투표를 실시했다. 약 60%의 유권자가 투표를 했고, 그 중 90%가 기지 정리 축소와 지위협정 재고에 찬성했다. 그럼에도 재검토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2005년 미일 합의에 의한 후텐마 기지의 헤노코로의 이전이 발표되었다. 헤노코로의 이전 발표에서도 일본 정부는 후텐마 기지 주변 수만 명의 주민이 피해를 겪는 것보다, 인구가 적은 헤노코로 옮기는 것이 낫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하지만 이미 미군은 1960년대부터 전략적 효용을 위해 헤노코에 새로운 기지를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2)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고 오나가 다케시 오키나와현 지사>
 
자신들의 입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어떤 포장된 명분을 내세우는 것은 평택 미군기지의 이전 과정과 비슷하다. 2004년 12월, 한미 양국은 연합토지관리계획(LPP)과 용산기지이전협정을 국회에 제출했다. 미군이 당시의 용산기지 118만평을 포함한 5,049만 평을 반환하는 대신 평택미군기지 확장을 위한 평택 지역 52만평의 신규 공여지를 포함한 312만 평을 새로 공여한다는 내용이었다. 국방부가 명분으로 내세운 것은 미군기지 주변의 피해로 인한 민원해소와 도시발전의 장애 제거였다. 그러나 이 역시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동아시아 개입의 전략 변화 요구가 관철된 것이었다. 전략적 유연성이란 오로지 북한 전력 억제라는 명분을 가지고 주둔해 있었던 주한미군을, 세계 어느 곳이든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 거기 대응해 투입시킬 수 있도록 효율적으로 전환 배치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방만한 기지를 재편하고 평택, 군산, 광주, 넓게는 제주 등을 포함한 서해안에 기지를 집중시켜 기동성을 높이고자 한 것이다. 평택으로의 미군기지 이전이 확정되면서, 주민들은 2001년부터 대책위를 결성해 저항을 시작했지만, 결국 평택 미군기지는 건설되었다. 3)
 
 <2006년 5월,  평택미군기지 부지 강제 수용을 위한 작전명 ‘여명의 황새울’ 작전의 진압 모습’>
 
점령의 역사

이것을 끝나지 않은 점령의 역사라고 부를 수도 있지 않을까. 오키나와의 역사야말로 점령의 역사였다. 근대 이전부터 일본에게 복속되어 결국에는 태평양전쟁의 전초기지로 사용되다가 미국에게 점령당했다. 이후 일본에게 반환되었지만, 일본 국토 면적의 0.6%밖에 되지 않는 오키나와에 주일 미군기지의 70% 이상이 주둔해 있다.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해방 이후 점령국은 일본에서 미국으로 옮겨갔다. 단독정부 수립 과정에서 미국의 지휘로 제주4.3의 학살이 자행되었다. 한국전쟁으로 확정된 분단은 냉전의 시작이었고, 남한은 자본주의 진영의 전초기지가 되었다. 80년 5월 광주의 학살을 미국이 용인해주었다는 것도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미군기지 건설로 인한 수많은 피해도 지속적으로 발생해왔다. 미국의 전략적 요구를 위한 일들이었다.

미국이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한 전략은 점점 치밀해져왔다. 대상을 바꾸고 더욱 은밀해지면서 점령의 양상은 변해왔지만,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여전히 어떤 이들은 피해를 감당해야만 했다는 사실이다. 피해를 감당하는 그들이야말로 자신들이 겪는 피해의 구조를 가장 잘 인식하고 있다. 주민으로서 겪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피해뿐 아니라, 동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개입으로 인해 동아시아의 주민들이 겪을 위협에 대해서도 가장 잘 알고 있다. 앞서 말했듯, 미국의 요구는 관철되지 않은 적이 없었기에 이들의 저항이 무의미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이 계속 머무르는 그 자리야말로, 이것이 점령임을 드러내고 일깨우는 유일한 증거이다.

98년, 서로의 아픔과 저항을 나누고 연대하기 위해 ‘미군기지에 반대하는 운동을 통해 오키나와와 한국의 민중연대를 도모하는 모임’(한국·오키나와 민중연대)이 결성되었다. 연대는 일본 본토에까지 이어졌다. 2008년부터 한국과 오키나와, 일본의 미군기지 문제 당사자들이 각자의 상황을 공유하고 새로운 저항의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지금까지 모여왔다. 재작년인 2016년에는 오키나와에서, 작년 2017년에는 일본에서 모였고 올해는 한국에서 각 지역의 주민들이 모인다. 돌아오는 9월 7일, <제11회 동아시아 미군기지 문제해결을 위한 국제 심포지엄>이 열린다. 맨 앞자리에 서서 피해를 감당해온 사람들, 그들이 견인해 온 새로운 평화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해주었으면 좋겠다.

참고문헌
1) 정영신, 2005, ‘오키나와의 기지화·군사화에 관한 연구’, 사회와 역사 제73집
2) 아라사키 모리테루, 2016, <오키나와 이야기>, 역사비평사
3)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홈페이지 중 전략적 유연성, 미군기지이전사업(LPP&YRP) http://usacrim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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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활동 소개

[2018년 8월 31일] <기자회견>-국방부는 기무사 주둔지를 국민의 품으로 즉각 반환하라!

정치 댓글 공작, 세월호 유가족 사찰, 계엄을 통한 시위진압 계획 등으로 논란이 되었던 국군기무사령부가 그 존치 근거인 대통령령(국군기무사령, 대통령령 제28266호)이 지난 8월 14일 국무회의에서 폐지 의결됨에 따라 사실상 해체되었다. 아울러 방대한 기무사 조직의 주요한 문제로 …

<자세히 보기 >

[알림] 미군기지 현장에서 평화를 일구는 사람들 -제11회 동아시아 미군기지 문제해결을 위한 국제 심포지엄-

오는 9월 7일 한국과 일본, 오키나와의 평화활동가들이 동아시아 미군기지와 평화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엽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평화를 위해 저항하고 있는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문제 해결과 평화를 위한 발표와 토론이 이어집니다.
요즘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준형 교수의 한반도 평화정세 관련 강연은 이후 전개될 남북, 북미 대화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심포지엄 참가 신청하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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